2023. 9. 21. 05:00

어제 병원을 다녀 왔습니다.

장례의 모든 절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과 간단하게 짐을 정리하고 자리에 누우니 명치끝이 얼마나 아파 오던지 가까이 다니던 내과를 방문했으나 수요일은 오전 진료뿐이라서 당신이 마지막 머물렀던 그리고 마지막까지 당신을 돌봤던 의사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나도 혹 죽을병이 아닌가 싶어서 진료를 받으러 갔는데 아마도 스트레스가 심해서 급성 위궤양이 온 듯 하니 수액을 맞고 약을 처방해 주면서 필요하면 내시경 한번 해보자 이야기 합니다.

 

그 명치 끝이 아파오기 시작한 것은 지난 달 826일 가까운 동네병원에 입원해서 처음으로 당신을 간병다운 간병을 하기 위해 밤을 세웠던 첫 날 당신의 아파하는 소리에 저도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690일이었습니다.

 

암으로 진단받고 당신이 싸워온 날들이 그 숫자만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병으로 아파한 것은 오로지 826일 이후 나의 손을 잡고 숨을 멈추던 새벽까지 24일을 아파했습니다.

 

그 전의 나머지 날들은 당신과 함께 한달에 한번쯤 서울구경, 데이트하는 날들이었습니다.

 

참으로 암이란 것이 암성 통증이란 것이 얼마나 아픈지 그 많은 투병의 날중에 아프다한적 없는 당신이 정말로 아파해서 저도 같이 아파했던 시간이 한달도 못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먹는 진통제와 혀밑에 넣어주는 진통제로 처방된 약들이 마지막엔 몰핀과 신경안정제까지 써야하는 지독한 아픔을 제 명치끝 아픔이 어찌 대적 하겠습니까?

 

그 아파하는 시간들을 조금은 피하기 위해 며느리를 앞세워 제가 덜 아프자했던 조금은 비겁한 남편이었습니다.

 

831일 서울의 병원을 다녀와서 91일 동네 병원에 입원한지 1718.

 

당신이 그토록 아꼈던 며느리가 44년을 살아온 남편도 모르는 것을 눈치 챈 듯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쉬기 시작했던 날이었습니다.

 

그 뒤로 온전히 당신을 마지막을 동행했던 그 딸같은 며느리의 간병이 그래도 날 덜아프게 해주었습니다.

 

새벽 3시반쯤이면 늘 병원을 가서 병실의 문을 살째기 열어보고는 했습니다. 대부분은 그래도 잠이 든 시간이라서 병실문을 닫고는 집으로 돌아오고는 했습니다.

 

어느 날 하루 병실문을 열었을 때 마침 부축을 받고 화장실을 가던때가 있었는데 아 정말 오늘은 운수가 좋은날이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날은 그래도 제가 혼자 간병하던 때처럼 침대 밑에 자리잡고 다리를 주무르면서 한 시간쯤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 그래도 통증을 잊고 추억을 회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주일전부터는 하루가 다른게 아니고 시간이 다르게 점 점 심해지는 통증 때문에 같이 길게 이야기 하는 시간도 점점 짧아지기만 했습니다.

 

담당 주치의의 연명치료 의향 여부를 듣고는 그 길로 친지들에게 모두 연락을 해서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래도 이승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인연의 정리도 없이 어느날 부고장을 받는 그런 슬픔을 주기는 싫었습니다.

 

그래서 참 많은 형제 자매들 그리고 당신을 좋아했던 당신이 좋아했던 사람들과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눌수 있었던 일들은 제게는 과업의 완수 같은 일이었습니다.

 

비록 당신을 보기 위해 내려오는 길에 당신의 부고를 들어야 했던 초등학교 동창 2명은 첫번째 문상객의 위치가 되었지만 말입니다.

 

당신의 부음을 듣고는 멀리 홍천, 의정부, 포천, 춘천에서 한 걸음에 달려와준 군 동료들과 아내들의 발걸음에서 당신이 살아온 길을 알 수 있엇습니다.

 

21살과 18살 정말 꽃다운 나이에 만나서 3년간 겨우 일년에 두어번 만나보는 편지로 사랑을 나누었던 당신이었습니다.

 

2421살의 나이에 결혼을 하고 44년을 살았습니다.

 

20년 세월 외며느리로써 시부모를 공양했던 당신때문에 전 효자 소리를 들었습니다.

 

두 아이 어머니로써의 삶과 군인의 아내로서 35년중 30년을 같이 했던 세월이었습니다.

 

그래도 새벽이면 병상끝에서 당신과 나누었던 수많은 기억들을 끄집어 내면서 왜 이렇게 기억을 나보다도 잘하지 그리고 나보다도 훨씬 현명했던 사실을 알아채고는 했습니다.

 

잘난 척, 효자인 척, 애처가인 척 했던 이중인격의 저보다는 훨씬 현명했던 당신이었음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이제 당신이 가버린 이 덩그런 집에서 당신이 12년을 키워왔던 고양이와 둘이서만 살아가야합니다.

 

며칠 당신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있기도 했습니다.

 

때론 아파하는 당신곁에서 보호자가 건강해야 간병을 잘 할수 있다는 이유들로 병원밥을 참 잘도 먹었던 일들이 조금은 미안해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게 해준 이야기들중 앞으로 아이들과 씩씩하게 잘 살아달라는 부탁을 들었으니 애처가인척 하는 나는 그 말을 듣기 위해 그리 살아 가렵니다.

 

그래서 남들에게 안 아픈척 안 슬픈척 하면서 살아 가렵니다.

그런 척하는 삶이 제가 잘 하는 일들이 아니겠습니까.

 

어제 병원들 다녀 온 이후 수액 하나와 처방받은 약 한봉지로 제 통증은 신기한 듯 사라졌습니다.

 

이제 그 치열한 투병 기록만 제게 남겨졌습니다. 당신의 병상일기는 826일에 멈추었습니다.

그 날부터 마지막임을 제가 알았던 듯 합니다.

 

그래도 정말 큰 아픔의 시간들이 짦았던 것이 슬프기도 하지만 그래도 고통의 시간이 너무 길지 않았음에 그 또한 감사함의 마음을 가지겠습니다.

 

그 동안 예쁜 항암모자와 가방을 만들어서 투병을 격려해주시던 뜰에봄님을 비롯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싶어했던 새벽바다님과 다현님, 서울 병원 가까운곳에서 살아 오가는 일정속에 같이 했던 두루미님, 가까운곳 살아서 가끔 부부동반 식사를 나누면서 같이했던 푸른창공님과 야생마님, 민이님과 치료과정에 조언을 해주었던 우산님, 전화로 위로해주셨던 월류봉님과 박대용님께 특별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가장먼저 인디카를 대표한 화환을 보내주신 회리 회장님 감사합니다.

먼길 마다않고 달려와 주었던 진동이 친구와 기찬이 아우님 다향님 그리고 설야님과 꼬꼬마님고맙습니다.

 

물심양면 많은 도움을 주신 인디칸님들게 이 짧은 글로 고마움을 대신하는 무례함을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 감사함을 조금이라도 갚아 나가기 위해 열심히 씩씩하게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92104:30 손 광민 배상.